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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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8일 

한강철교 복구하여 우리민족에 9.28 서울 수복의 기쁨을 준 미군공병대

   두 여중생 과실 사고 이후 미군 부대에 훈련을 중지하라고 요구한 시민 단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 광적면 효촌리의 그 도로는 6,25 때 휴전선을 넘어 남침한 북한 인민군 장갑차 부대들이 서울로 쳐들어올 때 지나던 도로였으며, 지난해 6월 13일 오전 10시 20분에 미2사단 44공병대는 인민군 장갑차 부대 저지 훈련과 교량 복구 훈련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2사단 44공병대의 이름을 처음 듣는 것은 1950년 9.28 서울 수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근 절반에 이르는 국군 장병들이 주말 외출 중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인민군이 장갑차들을 앞세우며 기습합니다. 다수의 병력이 즉시 후퇴하고 몇몇 국군 병사들이 M-1 소총으로 결사 항쟁하는 것이 가소롭다는 듯 인민군 장갑차 부대가 문산과 동두천과 철원을 넘어 서울까지 물밀듯 쳐들어 오는데는 불과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북한 인민군 장갑차 부대들이 두 여중생 사고 지점인 경기도 광적면 효촌리 도로를 통과할 즈음에 이승만 대통령의 행정부는 급히 각료 회의를 열고 부산으로 피난을 결정합니다. 정부 각료들의 피난 차량이 한강 철교를 넘어 부산을 향해 달릴 즈음 한 국군 지휘관은 전쟁사에 길이 남을 엄청날 실수를 저지릅니다. 6.25 동란 직후 그 장성이 사형 당한 사유는 한강 철교 폭파였습니다.

   북한 인민군의 기갑 사단이 물밀듯 쳐들어오는 상황 하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시킬 필요는 절실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강 철교가 폭파되었을 당시 이미 서울의 방송은 중단되어 있었으며 한강 철교가 폭파된 줄을 꿈에도 모르는 시민들의 피난 차량은 끊어진 한강 다리에서 강으로 떨어졌습니다. 저 앞의 차량들이 강 밑으로 떨어지는 줄 모르고 계속 밀려오던 피난민 차량들이 연이어 한강에 수장되었으며, 후퇴하던 전방의 군인들은 퇴로가 차단된 채 적의 손에 버려져야 했습니다.

   파죽 지세로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를 정복한 인민군은 전쟁 발발 일주일 후 도착한 미군 병력과 잔여 국군 병력의 결사적 사수에 부딪쳐 저 유명한 석달 간의 낙동강 전선 전투가 벌어집니다. 석달간의 낙동간 전선 전투에서 십만 명의 미군 병력이 희생되자 미국 내에서는 한국 전쟁에서 손을 떼라는 여론이 높았으며, 북한의 지휘관은 부산마저 함락시켜려 총력을 기울일 때 맥아더 장군의 저 유명한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됩니다.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의 결과는 참으로 엄청났습니다. 그토록 막강하였던 인민군 병력은 후방의 보급로가 끊긴 채 양쪽으로 맹공격을 받자 순식간에 궤멸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개시 열흘 만에 맥아더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을 모시고 9월 28일에 서울에 입성하여 수복 기념행사를 가질 것을 제안합니다. 그때 부관이 말합니다. "각하,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모실 한강 다리는 끊어져 있습니다." 그때 맥아더 장군의 나즈막한 명령은 단 두 단어였다: "Make one!"(없으면 만들어!)

   이 명령이 떨어지자 전 미군 공병대가 철야 작업을 벌이며 끊어진 한강 다리를 철교로 복구하는데는 꼭 이틀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아침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던 장군이 나란히 탄 지프차와 그 뒤를 잇는 한국 행정부 각료들의 차량이 연도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서울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강 철교 복구로 미2사단 44공병대와 우리 민족의 뜨거운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 여중생 과실 사고에 대한 편파적인 시각과 지나친 반미 시위로 오히려 잃은 것이 많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공평하게 바라보면 두 여중생 과실 사고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한국측 행정 공무원에게 있습니다. 미군은 작전 개시 전에 항상 서면으로 사전예고 하고 군작전 지역에 아무날 아무시에 민간인 접근을 통제하여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측 담당 공무원의 업무 태만으로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월 23일 미군측은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으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경기도와 주한미군 2사단은 23일 최순식(崔順植) 제2행정부지사와 존 우드 미 2사단장 등 양측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협력회의를 갖고여중생 치사사건과 같은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들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미군측은 차량이 3대 이상 이동할 때 지휘관에게 보고하는것을 의무화하고 현장 상황을 사전에 파악한 뒤 출발하도록 사단 이동규칙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미군측은 또 모든 훈련 차량에 대해 서로 마주치는 이동을 금지했으며 부교운반용 장갑차의 운행을 중지시키는 대신 부교장비는 수송차량을 이용해 운반하도록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은 경기북부의 굴곡지점 58곳을 앞으로 5년간에 걸쳐 정비하고 시야 확보가 잘 안 되는 곳에는 안전시설물을 설치 중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렇게 하면, 다시는 그와 같은 사고가 일어날 염려가 없겠지만 적의 공격시에는 교량을 파괴하고 아군의 진격과 피난민 이동시에는 신속하게 교량을 복구하는 미군 공병대의 지원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특히 미2사단 44공병대는 유사시 한국군에 지원할 최첨단 기계화 장비를 신속하게 수송하는 임무도 맡고 있음을 고려할 때에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민족의 슬기가 더욱 필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주한미군은 생명 담보로 우리나라에 파병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이땅에 생명 담보로 있기에, 그들의 생명을 다치게 하는 것은 미국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이요,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북한 공산당 정권이 알기 때문에 전쟁이 억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6월 13일 그 더운 여름에 온 국민이 한일 월드컵을 즐기고 있던 그 시간에도 미군 병사들은 우리 조국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땀흘려 훈련받고 있었습니다. 그럴진대 미군측의 신뢰에도 불구하고 우리측 담당자가 민간인 접근을 통제시키는 업무에 태만하였던데다 그 여중생들도 장갑차 옆에 바짝 붙어 걷고 있었던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를 범대위가 고의 범죄로 몰아치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처사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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