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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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3월 12일 

왜 반미주의자들은 동포를 차별하며 학대하는가?

   반미주의는 북한처럼 후진국 사회에서 나타난다. 같은 극동에 위치하며, 한국과는 달리 미군에 점령당한 일본에서는 반미 감정이 없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서로 경쟁하며 자기 나라에 미군 주둔을 유치하려 한다. 국가간의 이익도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다.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돈 안들이고 국방도 튼튼해지며 막대한 경제적 이익도 보는 대신 미국에 경찰 국가로서 미군을 주둔시킬 기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익을 위한 나눔이요, 이런 나눔 공동체가 되는데 반미 감정이 있을 턱이 없다. 선진국 사람들은 반미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 같은 후진국에서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식량 원조가 없으면 굶어 죽어야 하는 후진국에서는 미국의 원조를 받아먹고 살면서도 살기가 돋힌 반미 감정이 있다. 남한에도 반미주의자들이 있다. 반미주의의 뿌리는 지독한 시기심이다. 그렇다! 미국은 우리보다 선진국이다. 그러나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은 미국에 대해 그런 독한 시기심을 갖지 않는다. 역사관이 분명한 사람은 미국에서 선진 지식과 문명과 기술을 배워오되 자신이 한국인임에 대한 긍지를 갖는다. 미국에 있고 우리나라에 없는 것도 있지만 우리에게 미국에는 없는 것도 있다. 따라서 미국에 대해 독한 시기심을 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한국 사회의 신퇴폐 풍조의 하나로 반미주의가 등장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반미주의의 뿌리는 독한 시기심이라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자기 동포를 차별하며 학대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바로 반미주의자들이다. 노무현씨 장인처럼 붉은 완장 차고 죽창으로 자기 동포를 죽인 자들이 누구인가? 남로당이란 간판을 단 반미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죽인 자기 동포가 누구였던가? 수십 년을 한 동네에서 함께 살았던 자기 동네 사람들이었다. 왜 죽였는가?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농촌에서 도톨이 키재기했더니 자기보다 좀 더 잘 살더라는 것이다. 6.25 동란 때 월북한 이 남로당 반미주의자들을 역시 반미주의자인 김일성이 왜 다 죽였는가?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무식한 군인 출신이었던 김일성에 비해 공산주의 이론가 박헌영이 더 똑똑하였다는 것이다. 이렇듯, 반미주의의 뿌리는 독한 시기심이요, 국제 외교 시대에 미국에 시기심을 느끼는 자들이 바로 자기 동포를, 자기 동네 사람을, 자기 동지를 차별하고, 왕따시키고, 학대하다가 학살하는 자들이다.

   한반도 반미주의의 이론적 체계인 김일성, 김정일의 주체 사상의 골자는 나와 남을 자주의 주체와 투쟁 대상의 적으로 편가르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와 남을 우리의 시각에서 보는 미국의 청교도적 시각과 대조적이다. 미국인의 시각에서는 북한도 미국도 우리 중 하나이다. 따라서 북한 어린이들이 배가 고플 것을 생각하면 미국 사람들은 목이 메어 음식을 먹지 못한다. 미국은 자국의 예산을 줄일지언정 식량 부족국 지원을 예산의 최우선으로 세운다. 그리고 아무리 외국에 퍼다 주어도 전혀 여론의 비판이 없는 사회가 미국이다. 남한에서 복한에 퍼주는 것이 여론의 질타거리가 될지언정 미국에서는 북한에 아무리 많이 퍼다 주어도 누구 하나 문제 삼는 사람 없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인이 싫어하는 것은 북한 김정일의 핵무기 보유이지 결코 북한 주민들이 아니다.

   이렇듯 너와 나를 우리라는 나눔 공동체로 보는 미국인의 청교도적 세계관과 너와 나를 자주의 주체와 투쟁 대상, 즉 적으로 가르는 북한의 주체 사상은 미국과 북한의 정치 이론을 정반대의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런 세계관의 차이는 경제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다 똑같은 한국인이요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쌀밥과 김치를 먹어도 전쟁을 막는 방법에 대한 견해가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함에 의한 전쟁 억제안과 북한의 김정일 수령이 원하는 대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자는 주장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어떤 시각에서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느냐에 따라 북핵 위기 해결책이 이렇게 극과 극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수령주의는 사실 정통 공산주의가 아니다.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레닌은 죽으면서 스탈린은 공산주의를 크게 해칠 자이니 그를 경계하라는 유언을 내렸다. 그러나 레닌의 유언을 무시하고 강압으로 정권을 잡은 스탈린은 수천만 명을 죽이며 러시아의 공산주의를 독재 정권으로 변질시켰다. 그가 수천만명을 죽이거나 정신병자 수용소에 보냈다. 누구를 죽였는가? 공산당원을 죽였다. 실로, 이차 대전 중 전사한 러시아인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공산주의자들을 죽였다. 서로 동무라고 부르면서 동무를 차별하고 학대하며 죽이는 이것이 공산주의의 세계이다. 스탈린은 자기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모두 죽였다.

   북한의 수령주의나 주체 사상은 러시아의 공산주의보다도 한층 더 변질된다. 1953년에 스탈린의 임종을 지켜본 후르시쵸프의 말은 쌀쌀했다. "이 사람은 죽었다." 그리고 스탈린에 대한 대대적인 비판 작업이 시작되었다. 러시아 공산주의에서는 정권 세습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이름만 바꾼 세습 왕조가 북한이라는 국가에는 있다. 엄밀히 말하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경제 이론은 역사의 페이지에서 도태하였다. 북한도 이름만 인민 공화국이지 실은 수령 공화국이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수령 세습 왕조이다. 그러면 마르크스 사상과 주체 사상이 혼합된 북한의 경제관은 무엇인가? 그들의 경제 이론에서는 부(富: wealth)는 한정되어 있는데 잘 사는 자가 있기에 못 사는 자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무참하게 죽이면서 잘 사는 자들의 재산을 모두 압수하는 작업을 했다. 물론, 그들은 김정일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인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은 안한다. 그리고, 그들의 경제 논리에서는 미국이 잘 사니깐 북한이 못 사는 것이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보다 더 잘 산다? 그럼 적화통일시켜서 빼앗아 오라구 그들은 말한다. 남한의 대북 지원을 그들은 상납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한에서 야금 야금 상납 받는 것으로는 양이 안차니깐 통째로 삼키려고 민족 공조의 미명을 내세워 적화통일시키려 한다.

   이렇듯. 미국의 식량 원조로 연명하며 더 필요한 것은 남한에서 빼앗아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 북한의 경제관과 달리 미국의 청교도적 경제관은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출발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말을 하면 "예수님은 경제는 잘 모르신다"고 말할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제관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신 분이 '평화의 기도'로 유명한 이탈리아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1182-1226)이다. 그는 다이애나 황태자비와의 염문으로 세인에게 알려진 더디 파예처럼 그 시대 재산가의 아들이었다. 그의 앞날에 온갖 부귀 영화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은 옷까지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누더기 옷을 걸치고 맨발로 다니며 수도 생활을 하였다.

   물론, 선한 일에 쓰기 위하여 경제는 필요한다. 그런데 그 경제의 참 목적을 잊어버리다 보면 다음의 두 극단적인 오류에 빠지기가 쉽다. 하나는 그저 먹고, 마시고, 노는 것 이상의 영적 비전이 없이 끝없는 물질적 욕심만 채우려는 형이요, 다른 하나는 환경을 탓한 나머지 꿈과 동기 부여를 상실하는 형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 문제가 오늘 남한과 북한 양국이 모두 빠져있는 문제이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남한 사회에서는 정신적 가치관 추구 혹은 미국처럼 자발적인 재산의 사회 환원은 커녕 끝없는 물질적 욕심만 채우려는 모순에 빠져 있다. 대기업이 있어야 외화를 벌어올 수 있는데 노무현 정권이 개혁을 명분으로 재벌을 해체시키려 한다. 그리고 털어 먼지 안나는 기업이 별로 없기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북한에서는 미국 같은 선진국이 있기 때문에 북한 같은 후진국이 생긴다며 반미주의와 전쟁 분위기만 부추길 뿐경제 발전의 꿈과 동기 부여를 상실한 모순에 빠져 있다.

   그러면, 어째서 미국에서는 법으로 요구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자발적인 사회 환원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삐걱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강제로 환원시키려 하는 것일까? 경제사의 관점에서는 수백 년 동안 발전해 온 서구의 시장 경제에 비해 아직 그 역사가 너무도 짧은 우리의 기업은 국가가 좀 더 보호해 주어야 함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갓피어나는 그 어린 싹들을 죽이려 하는가? 수출 산업들을 전부 해체시키면 장차 오천 만 국민을 무엇으로 먹여 살려야 할지 내다보지 못하는 노무현 경제팀은 분배만을 외친다. 그러나 당장 서민에게 달콤하게 들릴지 모르는 이런 노무현의 개혁 정책의 무모함은 역사적 시각에서도 드러난다. 서양에서는 성 프란시스의 뒤를 이어 무수히 많은 왕족들, 귀족들, 부호들이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수도 생활을 한 시대가 있었다. 수도원에서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기 위해 여러 연구를 하면서 농업 기술, 산업 지식을 발전시켰다. 선교사들이 가는 곳마다 농토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산업이 현대화되었던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신앙 공동체들이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발전시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업 사회화 이전에 영적, 정신적 혁명이 있었다. 이에 비해 서구에서 수백년에 걸쳐 발전시킨 산업화와 시장 경제를 삼십 년 동안에 발전시킨 우리나라에서는 성 프란시스와 그의 후예들처럼, 미국의 청교도들처럼 영적 가치관을, 분명한 기업 윤리를 확립할 기회가 없었다. 늦게라도 해야 했는데, 김영삼 대통령 때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고, 김대중 대통령은 카지노로 시작하여 로또로 끝났다. 그리고 노무현 씨가 닥치는 대로 개혁의 칼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것은 그렇게 성급하게 각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보 운전사로 대체시키는 서열 파괴로 이루어질 문제가 아니라, 보다 긴 역사적 안목에서 국민들에게 영적, 정신적, 도덕적 가치관을 심어줌에 의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남한의 자본주의 경제도 북한의 공산주의 경제도 늪에 빠져 있는 이 위기 상황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자. 혹자는 예수님의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말씀은 좋은 자선의 가르침은 될지언정 투자의 법칙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지혜로운 투자자가 되는 길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눅 6:38). 그리고 이런 성서적 가르침에 의거한 미국인의 경제관에서는 우리가 더불어 잘사는 나눔 공동체를 형성할 때 (富: wealth)의 효용성은 무한하게 증대된다. 미국인이 보는 경제 세계는 북한의 "나 살고 너 죽자" 식의 세계가 아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눅 6:38).

   예수님의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말씀은 경제를 무시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경제 행위를 인정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주라"는 권유 앞에 "팔라"는 권유가 있다. "네 있는 것을 다 팔라." 장사를 하라. 사업을 하라. 그러나 여기에 선한 청지기의 기업 윤리가 있다. 사업의 목적은 개인의 부의 축적이 아니라 공동체의 부의 공유에 있다. 주는 자가 되는 비전을 가지고 장사를 하라는 말씀이다. 베푸는 자의 비전을 회복하라는 도전이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에 근거한 경제관에서는 성장과 분배는 경제의 양 수레이다. 북한 경제의 문제는 분배만을 말하였다는 데 있다. 사유 재산을 몰수하였다. 그러나 성장의 개념이 없었다. 노무현 정권의 경제 정책도 이런 문제에 빠져 있다. 성장 정책은 전혀 없으면서 분배를 위한 개혁의 칼만 휘두르는 사이 한국 경제는 치유될 수 없는 상황으로 멍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거꾸로가는 경제관을 가진 반미주의자들은 입으로는 분배의 평등을 마하면서 실은 자기 동포를, 자기 동네 사람을, 자기 동지를 차별하고, 왕따시키고, 학대하다가 학살하는 자들이다. 그 몇가지 역사적 실례들을 살펴 보자. 먼저 월북한 남한의 반미주의자들을 김일성이 왜 모두 학살하였는지 살펴 보자.

   1952년 12월 15일, 김일성은 노동당 제 5차 전원회의에서 핵폭탄과 같은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종파분자들은 당과 정권기관에 파고들기 위해 과거의 혁명생활에서 깨끗지 못한 것을 서로 엄폐해 주며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다… 우리는 오늘 이런 분자들을 묵과할 수 없다! 종파주의 잔재를 그냥 남겨둔다면 인민민주주의 국가들과 우리의 형제적 당들의 경험이 가르쳐 주는 바와 같이 그들의 마지막 길은 적의 정탐배로 변하고 만다는 사실에 우리 당은 심심한 주의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1953년 2월 박헌영은 연금당했다. 동시에 이승엽, 조일명, 임화, 박승원, 이강국, 이원조 등 남로당의 지도부들이 검거되어 7월 30일 기소되었다. 8월 3일 공판이 시작되었고, 8월 6일 남로당 빨갱이들이 싹쓸이 사형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차례는 당연히 공산주의 이론의 대가요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던 박헌영이었다.

   그러나 박헌영이 이년 동안 온갖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미제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거부하자 김일성은 고문실에서 박헌영을 빨개 벗기고 여러마리의 세퍼트를 풀어 박헌영을 물어뜯게 했다. 그제서야 엉터리 자백 요구에 응한 박헌영은 1955년 12월 15일 초췌한 표정으로 빨갱이 재판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1939년부터 체포될 때까지 미국의 간첩으로 있었다…." 그리고 12월 17일 그는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이렇듯, 연합전선을 위해 이용해 먹을 때에는 영웅으로 부르다가 나중에 단지 이북 토종 빨갱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참하게 죽이는 것이 빨갱이의 생리이다. 좌익은 이미 그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권영길과 문성근을 다음 단계의 연합전선을 위해 어디까지 이용하다가 언제 버린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알 것이다.

   남로당계 빨갱이들을 모두 처형되었을 때 중국공산당 출신, 이른바 연안파 빨갱이들은 밥그릇 경쟁 대상이 제거되었다고 옆에서 손뼉치며 좋아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런 일이 러시아에서 있었다. 스탈린이 자기 가신들을 하나 하나 죽였을 때 옆에서는 다음이 자기 차례인 줄 모르고 손뼉치며 좋아했다. 아니나 다를까! 단지 이북산 토종 빨갱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연안파 빨갱이들도 모두 반동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무정(포병사령과)과 방호산(6사단장) 등 연안파 장군들을 차례로 제거한 뒤 1956년 유명한 '8월종파사건'을 통해 김두봉(최고인민회의 위원장), 최창익(부수상) 등 연안파 거물을 쫓아냈다. 그러나 이렇게 순종과 잡종을 가려 빨갱이들을 처형하는 김일성 자신은 북한산 토종 빨갱이었던가? 아니다! 그 역시 소련파 잡종 빨갱이였다. 그렇다면, 소련파 잡종 빨갱이들은 숙청 대상에서 제외되었을까? 천만에! 잡종 빨갱이들을 처형하는 연합전선을 위해 소련파 잡종 빨갱이들을 이용하던 소련파 잡종 빨갱이 두목 김일성은 소련파 잡종 빨갱이들도 하나 하나 차례로 정치범수용소와 아오지 탄광에 보냈다. 이런 방법으로 1956년에 그는 허가이(조직담당 비서)등 소련파와 몇몇 빨치산 장군들을 숙청하였다.

   만일 월남이 1973년에 미군 철수시키고 평화 협정 맺어 민족 공조하자는 월맹의 불가침조약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설사 전쟁이 일어났다 해도 십만 명 미만이 죽고 월맹을 정복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월남은 세계 군사 4대 강대국이요, 미군과 한국군이 지켜주는 나라였음에도 당시 군인들에게 군화마저 지급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월맹이 내세운 민족 공조 속임수에 넘어가 미군 철수시키고 평화 협정 맺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던가? 보안법이 없어진 사이공에 무수히 많은 통일 단체들이 생겼으며, 통일되면 대기업과 지주들의 토지를 빼앗아 서민에게 준다고 회유하였다. 월남의 친북 좌파들을 이용한 이런 일년 남짓한 남파전 후 1975년 1월 9일에 휴전선 일대를 넘어 월맹군이 기습해 왔다. 평화 협정 후 주적 개념이 없어진 월남군에는 사기가 없었기에 반격도 못해 본 채 적에게 수도 진입로를 열어주었다. 철수하면서 월맹이 남침하면 해군과 공군을 보내 북폭하겠다던 미국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노무현처럼 티우 대통령이 자기가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미국을 말렸었을까? 그의 평화적 해결의 의지가 무엇이었든 적은 적이었고 전쟁은 전쟁이라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수도 사이공이 함락된 다음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 날로 티우 대통령이 항복을 선언하자 미군이 지원해 준 막강한 군사 장비를 한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채 그 넓은 국토가 적화통일 되었다. 그리고 결사 항쟁의 각오로 적을 맞아 싸웠다면 십만 명 미만의 희생으로 나라도 구하고 월맹군도 섬멸할 수 있었을 것을 평화적 해결에 대한 미련으로 항복하자마자 구백 만명이 학살되었다. 이 학살극을 피해 재산 버리고 보트 타고 바다로 도망친 사람들의 수만 해도 백만 명이 넘었다.

   그러면, 월맹의 반미주의자들이 누구를 학살하였는가? 그들이 민족 공조를 내세워 미군 철수를 위한 연합 전선에 이용해 먹던 월남의 반미주의자들을 싹쓸이 학살하였다. 1975년 4월 30일 월맹군 탱크가 사이공에 입성하자 좌익 시민단체 인사들은 월맹기를 들고 월맹군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이제 이들의 세상이 왔는가? 아니다. 그 날 월맹기를 들고 월맹군을 열렬히 환영하던 빨갱이 시민들은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두 처형되었다. 이북 토종 빨갱이가 아니면 죽이는 것이 빨갱이들의 생리요, 한번 배신한 자는 다시 배신한다는 것이 좌익 집단의 논리이기에 이들은 모두 처형되었다.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벌이던 교수, 종교인, 학생, 민주인사들은 예외 없이 모조리 처형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 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월남과 월맹은 거의 문화적인 차이가 없었는데도 900 만명이나 죽여야 공산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다면 한반도에서 똑같은 상황이 재연될 때 김정일은 훨씬 더 많은 동포를 학살할 것이다. 개방과 자유를 맘껏 누려본 남한의 신세대는 북한식 통제 사회에서 도저히 적응할 수 없기에 처형된다. 그리고 민족 공조를 외치며 남한에서 김정일 똘마니 노릇하는 좌익이 제일 먼저 학살될 것이다. 남한의 좌익은 무한 자유를 요구하는 세대인데 비해 북한은 김정일 수령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과 자유를 송두리째 빼았겨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식 체제 강요에 가장 불만을 품을 남한의 친북 좌파 세력이 김정일의 학살 명단 첫 줄에 있는 것이다. 여하간, 노무현은 월남의 티우 대통령이 당했던 속임수에 속아넘어 가서는 아니된다. 민족 공조를 내세운 평화 협정 체결도, 연방제 통일을 내세운 항복 요구도 실은 구백 만영을 학살하고 백 만명이 바다에서 물귀신되게 하기 위한 속임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속임수를 지금 북한의 김정일이 쓰고 있다.

   끝으로, 동포를 차별하며 학대하는 반미주의자들에게는 남을 불신하는 특성이 있다. 반미 촛불 시위를 이용하여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씨는 미국을 불신하는 표시로서 "내가 미국을 말리겠다"는 말을 자주함으로서 미국으로부터 불신당함을 스스로 자초하는 빵점 외교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애국자이기에 미국을 불신하는가? 천만에! 자기 소속 정당을 불신하여 당선되자 마자 민주당 내에 또 하나의 당을 만들었다. 자기 자신이 정당 운영 경험조차 없는 초보 운전사이면서 서열 파괴한답시며 검찰 지도부를 초보 운전사들로 교체시키고 있다. 분명한 정보가 바른 국가 정책의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정론 언론은 정부 기관들에서 못보게 하고 이소희 기자처럼 남파 공작원에 포섭된 것으로 보이는 기자들이 수두룩한 오마이뉴스나 편파 보도가 심한 한겨레신문만 구독하게 한다. 한국 경제의 수레 역할을 하는 경제계마저 불신하는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개혁의 대상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사실 불신의 대상은 거짓말하는 자가 아니던가? 적어도 미국은 정치인의. 더구나 대통령의 거짓말은 용납되지도 용서되지도 않는 사회이기에 우리가 노무현씨에게 물어야 할 물음이 있다. 좌익과 우익 편가르기를 하여 친북 좌익 운동권을 정부 요직에 앉히는 일을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하고 있는 노무현에게 국민이 먼저 물어야 할 정직의 가치관의 질문이 있다. 대선 때 국민에게는 자기는 정치 자금 안 받는 선거 운동을 한답시며 눈물 흘리며 돼지 저금통을 내밀더니 뒤로는 100대 기업에 정치자금 수금하러 다녔다. 이것은 선거법 위반도 위반이지만 무엇보다도 국민을 기만한 명백한 거짓말이다. 자기 입으로 한 이 거짓말에 대하여 노무현은 무어라고 말하는가?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Safire)는 3월 10일자 ‘아시아의 전선(The Asian Front)’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의 방어는 ‘강력한’ 한국에 맡기고 미국은 북한 핵(核)을 공습할 능력만 보이면 된다면서, 한국을 ‘동맹’이 아닌 ‘중립국(neutral)’으로 규정했다. 이것이 애국 국민을 불신하고, 정론 언론을 불신하고, 단지 좌익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문가들을 불신하고, 혈맹 미국을 불신하고, 오로지 국제 강도 김정일만을 신뢰하며 그를 위해 엉터리 변호사 역할을 하는 노무현의 외교가 초래한 우리 민족의 위기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친구는 있어야 되는 것인데 이제 미국이 남이 되면 우리나라의 친구는 어느 나라인가?

   역사는 반미주의자들이 자기 동포를, 자기 동네 사람을, 자기 동지를 차별하고, 왕따시키고, 학대하다가 학살하는 자들임을 실증하기에 우리의 혈맹 미국에 대한 대통령의 반미주의 표출은 결코 애국적인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매국적 행위이다. 노무현은 반미 발언을 하고 나서 그것은 반미주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우정은 신뢰로 표현되는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시키려고 무진 애쓰는 미국을 신뢰해야 한다. 이제는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 공산주의 편에 있는지 자유 민주주의 진영 편에 있는지 분명히 그 입장을 밝히셔야 한다.

   말로는 국민에게 주권이 있으며, 국민을 대통령으로 받들겠다고 하면서 만일 국민이 이런 요구마저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이제 국민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지금 조국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상황은 각처의 애국 논객들과 각계의 우국지사들이 “제2의 4·19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는 때이다. 또 한 논객은 이렇게 말한다: "국민 여론 물어 국민경선하고 국민 여론 물어 후보단일화하여 노사모 바람과 촛불 시위 바람으로 당선된 대통령 국민 여론 물어 당선 무효 찬반 투표하자."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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