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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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2월 12일 

미국 언론이 본 햇볕정책과 반미감정의 역학적 관계

.    최근 신세대 일부 청년들 사이에 일고 있는 반미 정서의 배후에는 남파 공작원들과 북한에서 조종하는 심리 전술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왜 김대중 정부가 대선을 즈음하여 반미 촛불 시위를 방치하였는냐는 미국인들이 몹시 궁금하게 여기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한 단서를 2월 10일자 (2003년) 워싱턴포스트 지에 "서울의 스캔들"(A scandal in Seoul)이란 제목으로 실린 사설이 제시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본래 이 사설은 노무현 당선자가 김대중 대통령의 스캔들을 적당히 덮고 넘어가서는 안 될 이유를 논하는 글이다. 여당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즈음하여 현대를 통해 변칙적인 방법으로 북한 김정일 계좌에 송금된 것이 통치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단지 노무현 당선자의 여당의 이해 관계를 넘어 아시아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비밀 송금 사례가 한국 뿐 아니라 국제 사회의 대북 정책 조율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는 관건이므로 대북 비밀 송금의 내막은 숨김없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 이 사설의 골자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를 들여다 볼 때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북한의 김정일이 남한 동포를 핵 인질로 삼고 공갈 협박을 하는데 김정일을 추종하는 친북 좌익 집단들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기이한 현상이 햇볕정책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이 논설자의 분석이다.

   햇볕정책은 김대중 정부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는 현명한 판단을 하시는 분이며, 평화와 인내의 외교에서 남북 관계는 발전할 것이라는 신념을 줄 때에만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워싱턴 타임즈 논설자는 햇볕정책을 이렇게 요약하여 설명한다: The essence of this "sunshine policy" is that the North's Dear Leader, Kim Jong-il, is ultimately a reasonable man, and that from a diplomacy of peace and patience, the bonds of trust will develop.

   냉전 시대의 우리나라의 적대국이 북한이라면 미국의 적대국은 러시아였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도 미국과 러시아 양국간에 냉전을 종식시킨 정상회담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관찰해 보자. 1

   1986년 봄에 러시아의 고르바쵸프가 미국측에 내놓은 평화협상안이 미국의 정가와 언론계에 소요를 일으켰었다. 만일 두 사람이 서로 팽팽하게 줄을 잡아당기다가 한 편이 갑자기 줄을 놓으면 다른 한 편은 어떻게 되겠는가? 당시 미국이 그런 입장이었다. 만일 이 안을 스위스가 내놓았으면 그럴 듯 했겠다. 그러나 당시 핵무기에 관한 한 미국을 세 배나 능가하던 군사 초강대국 러시아, 전세계를 적화 통일시킬 때까지 만족할 줄 모르는 팽창주의자, 레이건이 러시아의 팽창주의 저지에 그의 정치 생명을 걸었던 바로 그 나라의 수뇌가 돌연 평화협상안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자, 이제 무엇으로 그를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의 타임지 표지 기사 제목 “진실인가 아니면 북극곰의 속임수인가?” 가 반영하였듯이 미국의 정가와 언론계에 신중론이 우세하였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침공할 때 선전 포고 대신 평화 협정을 맺어 상대국을 방심시키는 것은 히틀러의 상투 수법이 아니던가? 그러나 레이건은 그 평화 회담 제의를 받아들여 고르바쵸프를 백악관에 초대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그런데 이 미국과 러시아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은 처음에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번거로운 예전이 생략되고 고르바쵸프의 전용 승용차가 백악관으로 안내를 받았으며 레이건이 백악관 현관 밖에 마중나와 있었다. 그런데 명배우 출신인 레이건이지만 아직 경계심을 풀수 없었는지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다. 러시아 식 중절모를 쓴 고르바쵸프가 승용차에서 내려 넉살 좋은 미소를 띠우며 먼저 레이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레이건이 씩 웃으며 악수에 응했다. 그는 곧 고르바쵸프에 친근감을 느끼며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냉전 시대를 종식시키며 인류를 핵 전쟁의 공포에서 상당히 해방시켰던 저 역사적 미소 정상 회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지난 6월 13일 (2000년) 순안공항에 김 대중 대통령의 마중을 나온 김 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우리 국민과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모두 양손에 분홍, 빨간 색의 꽃술을 들고 흔들며 우리 대표단을 환영하는 순안공항과 평양 연도의 무려 60 만의 인파에 우리와 전세계는 다시 한번 놀랐다. 기쁨의 환성이 온천지를 진동하는 그 환영 열기는 가히 놀라은 것이었다.

   그날 우리는 이런 감동을 받았었다. 어째서 우리가 북녁 동포들을 적이라고 불렀었던가? 단정하고 곱게 차려 입고 우리를 반가이 맞이하는 북녁 동포들은 선남선녀요 거울 속의 우리의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사나운 적이 아니라 유순한 적, 서로 사랑하는 적이었다. 국제 사회에서는 테러 집단이라는 오명으로 알려진 그들, 그러나 춤추듯이 쌍수를 들고 덩실덩실 뛰며 우리를 환영하는 그들의 그 선량한 모습 어디에서 악의를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기적이다. 그리고 꼭 거울 속의 우리 같은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때묻지 않은 우리의 참 모습을 보는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차라리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에 우리는 그만큼 큰 감동을 받았다. 공산주의 사회의 구성원이기에 앞서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요, 한 핏줄을 나눈 우리 동포였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정계에서도 이러한 우리의 남북 화해 무드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 러시아 고르바쵸프의 제안으로 출발한 양국 정상회담이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적대 관계에서 동반자 관계로 변화시켰다면 한반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제안으로 남북 화해가 실현될 참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이년 반이 넘지 못해 큰 실망으로 변했다. 처음에 레이건과 고르바쵸프가 어색하게 만날 때 고르바쵸프는 진심을 가지고 미국을 대하였다. 러시아는 훗날 약속대로 모든 핵무기를 폐기시키고 시정을 개방한다. 북극곰을 의심하던 미국이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믿듯이 미국이 김정일 위원장도 믿어 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은 러시아의 고르바쵸프와 달랐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으나 속으로는 속이고 있었다.

   자, 그럼 여기서 워싱턴 타임즈 논설자의 시각에서는 왜 햇볕정책과 반미 정서가 연계되어 있는지 살펴보자. 비록 거금을 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샀다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으나 그의 햇볕정책의 의도만은 좋은 것이었다. 근자에 그가 반미주의자라는 의심을 사기도 하지만 반미주의가 그의 의도였던 것은 아니다. 단지, 햇볕정책에는 반미주의로 빠지는 함정이 있음을 김대중 대통령은 간과하였을 뿐이다. 자, 만일 평양은 아무 잘못도 할 수 없으며, 남북 관계는 진전되어야 한다고 하자. 그러면 한반도 국토 분단의 원인에 대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바로 여기에 그 책임을 미국에 전가시키는 친북 좌익 세력의 논리가 먹혀 들어갈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비록 의도적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햇볕정책을 강하게 추진함에 있어서 여당은 반미 정서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햇볕정책과 반미감정 간의 이러한 역학적 관계를 워싱턴타임즈 사설은 이렇게 논한다: "But there is an overlooked corollary to the sunshine policy. If Pyongyang can do no wrong, and yet relations do not measurably improve (and they have not), then someone else must be blamed for the island's division. Hence the decidedly anti-American sentiment South Korea's ruling politicians have helped foment." (http://www.washtimes.com/op-ed/20030210-81733728.htm )

   그렇다! 반미 정서는 결국 한반도 분단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시키는 거짓 주장에 의거한다. 2000년 6월 13일 연도에 늘어선 평양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두 정상을 태운 검은색 리무진 승용차가 평양시에 들어설 때 북한의 여 아나운서가 “과연 우리 민족이 그 누구 때문에 이토록 가슴 아픈 분단의 비극을 당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 누가 이 아주 쉽고도 한없이 어려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사실만은 분명하다. 미국은 일본제국에서 우리나라를 해방시켰으나, 러시아의 공산주의 팽창주의가 우리 국토를 분단시켰다.

   1945년 8월 11일 미국이 작성한 한국 주둔 일본군의 항복 조건 문안의 일반 명령 1호에서 삼팔선 이북의 일본군은 소련군에 그리고 삼팔선 이남의 일본군은 미군에 항복할 것을 규정하였다. 그리고 8월 15일에 일본 천황이 방송으로 항복을 발표하자 삼천리 반도 강산에는 해방의 기쁨과 감격이 충만하였으며, 미국은 승전 경축으로 들떠 있었다. 그후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극동의 CIA는 소련군이 북한에서 계속 남진하고 있다는 첩보를 워싱톤에 긴급 보고하였다. 이에 당황한 워싱톤 행정부는 9월 8일에 하지 중장이 인솔하는 미군을 남한에 급파한다. 다행히 소련군은 정확히 북위 38도에서 남하를 멈추었으며, 미군은 서울에 입성한 다음날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한다. 북한에서 소련군 장교 출신 김일성을 후원하는 소련군 주둔 사령부의 군정이 곧바로 시작되었으며, 남한에서는 잠시 행정과 치안의 공백기가 있다가 역시 곧 군정 체제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왕래할 수 있는 분단이었으나, 1948년 8월과 9월에 남한과 북한이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별개의 독립을 하므로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다가, 1950년의 6.25 사변과 1953년의 정전 협정 이후 더 이상 왕래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한반도 분단 원인에 대한 친북 좌익 집단의 거짓 주장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워싱턴타임즈 사설이 지적하는 햇볕정책과 반미감정의 역학적 관계는 전교조의 통일교과서에서도 입증된다. 이 책은 김정일 공산정권에 대하여 학생들이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도록 꾸며져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분단 원인에 대하여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여기에 햇볕정책의 근본적인 모순점이 있다. 우리가 북녁 동포를 사랑하는 것과 김정일의 폭정을 찬양하는 별개의 문제이다. 탈북자는 외면하면서 김정일에게는 막대한 자금을 비밀 송금하는 것이, 김정일 공산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여 주는 것이 햇볕정책의 모순이다. 그러기에 북한 정권이 대한민국의 주권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마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당선자는 외면하고 있는지 국민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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