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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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2월 4일 

두 마리의 토끼를 좇던 두 한국인 지도자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위하여 2000년 6월 13일 북한에 도착하신 남한의 김 대중 대통령을 북한의 김 정일 국방위원장이 환영할 때에 한반도에 새 역사의 물꼬가 트고 있었다. 은둔자로만 알려져 있던 북한 지도자가 김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하여 성대한 환영식 중에 친히 순안공항에 나타났을 때에 세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지켜 보았다. 두 정상이 활주로에서 악수하였을 때에 실로 그 주변에는 대감격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전통 한복을 입은 수백 명의 북한 여인들은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듯 양손을 높이 들어 꽃술을 흔들며 덩실 덩실 뛰었다.

   두 정상을 태운 검은색 리무진 승용차가 북한의 수도 평양에 이르자 옷을 단정하게 입고 연도에 겹겹이 늘어선 수십 만의 대환영 인파가 온천지를 진동시킬 듯 환호하며 분홍색 꽃술을 흔들어 남한의 대통령을 환영하였다. 당시만 해도 북한의 전형적 이미지는 호전적인 공산주의 정권과 스탈린주의자 전체주의 사회가 전부였었기에 남한 사람들에게는 북한 사람들이 보여준 이 따듯하고도 생기에 넘친 환영식이 놀랍기 그지 없었다.

   이날에 오십 년의 냉전 후에 화해와 통일을 위한 희망의 징조를 본 칠천 만의 한국인은 기쁨에 넘쳐 환호하였다. 이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의 첫 달콤한 열매는 50년간의 이별 후에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 동안 수백 명의 한국인들이 재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중대한 발전은 가족을 그리워함으로 양 빪이 눈물에 젖은 수백 만의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6.25 동란 때 한 형제는 북한군에 징집되고, 다른 한 형제는 남한군에 입대하였다. 휴전 협정이 맺어진 후에 북한은 가족이 북한에 있는 남한 사람들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서울에서 평양은 삼십 분밖에 걸리지 않으나 지난 8월 13일에 짧은 가족 재회를 위해 평양을 방문하였던 사람들에게는 오십 년의 긴 여정이었다!

   한국의 희년 축제 분위기는 흔히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로 일컬어지는 남한의 김 대중 대통령께서 21세기 첫 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 절정에 달하였던 듯하다. 김 대통령은 냉전의 마지막 전선 저 너머 북한과의 포근한 유대를 위한 "햇볕 정책"을 실시하였기에 그 명예로운 노벨상 수상자가 되셨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사람의 외투를 벗기려면 강풍이 아니라 따스한 햇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례적인 호응에 깊이 감동하면서도 우리는 또한 겉에 드러나지 않은 동기를 알아차려야 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햇볕정책에 눈먼 김대중 대통령은 북의 공산당 정권은 적화 통일을 그들의 국시로 삼아왔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였던 듯하다.

   그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지 꼭 2년 반 지난 오늘 그날의 영예의 두 한국인 지도자는 한국인에게 치욕을 안겨준 지도자들로서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2억 달러의 대북 비밀 지원설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을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매수하였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김 대통령은 단지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였을 뿐이다.

   사실, 역사적 남북정상회담 때 서로 부등켜 안고 악수한 두 정상은 각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경제 대통령이 되려는 목표가 분명히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도 강성대국의 꿈을 이루려는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당시 남북한 모두 경제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IMF의 터넬을 지나온 남한도 국제 경쟁력을 위해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산업시설이 낙후되고 경제가 피폐해진 북한도 남한의 선진 기술 및 수출 산업 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제 남북한이 서로 협력하여 경제를 발전시킬 대망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그 이름도 찬란한 햇볕정책은 결국 오히려 그 성취가 더욱 어려워지게 한 눈먼 정책이었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남한의 수출 산업 노하우가 만나는 정책과 북한 김정일한테 우리에게 쏠 무기 수입 자금을 지원해 주는 정책 사이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 체재의 안보가 위협받는 한 햇볕정책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이 남북 경제 협력을 진전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자칫 전쟁 도발로 우리 민족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결과를 초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 두 지도자가 모두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명예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무기를 더불어 갖기를 원하였다. 금강산 관광 대북 송금을 북한이 러시아제 미그21기를 40대나 구입하는데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1999년 5월에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무려 2억 달러를 정상회담 2000년 6월 초에 북한에 송금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그는 전쟁 위협은 없다고 늘 말해 왔다.

   그럼에도, 북한은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시작되던 1998년부터 고폭 실험을 70회나 해왔으며 언제든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수입하였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김 대통령 취임을 전후로 남파 공작원들을 남한에 보내 심리 전술을 하게 하였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의어로 사용하며 친북 좌익 세력을 키우며 반미 정서를 선동하고, 소파 개정 요구, 주한미군 철수 시위를 선동하는 것이 바로 이 간첩들의 심리전 임무이다. 그럼에도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내세워 오히려 간첩 잡는 것을 막았다.

   만일, 김정일이 적화통일 야욕을 버렸다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큰 업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대는 김정일이었으며, 그는 핵무기 소유를 원하였다. 그는 김 대통령처럼 노벨평화상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핵무기 소유에 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의 핵무기 소유를 포기하는 유일한 조건은 북미 불가침조약, 즉 그의 적화통일 야욕을 성취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건을 미국이 마련하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를 원하기에 더 이상 북에 끌려 다니며 양보할 수 없다. 우리에게 남북한 경제 협력의 기회가 왔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던 두 한국인 지도자에 의해 그 꿈은 어이없게 무산되고 있는 것이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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