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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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8월 4일 

좌익의 무식 드러내는 좌익의 해방전후사 사관

   좌익은 한반도 분단의 원인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 구도라고 주장한다. 좌익의 주장을 따른다면, 결국 미국은 소련의 공산주의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남한에 민주주의 국가 수립을 지원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외세 이데올로기가 한반도 분단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시대 상황의 착각이요, 좌익의 무식을 단적으로 폭로하는 주장이다.

   2차 대전 중 미국이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되도록 국제 무대에서 외교 활동을 벌인 것은 전혀 이데올로기와는 관계가 없었다. 일제 시대 때 상해 임정의 독립지사들이 미국에 우리의 주권 회복을 위한 독립을 요청하였다. 그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우리 민족이 도움을 호소하였으며, 미국이 우리의 호ㅛ소에 귀를 기을였다. 그런데 좌익은 왜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좌익은 주장은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달라고 해서 구해 주었더니 감사하기는 커녕 구해 준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다고 오히려 자기를 살려 준 사람을 비난하는 것과 똑같다. 좌익이 이런 억지를 반미주의의 근거로 삼는 것은 본래 그들의 양심이 아주 불량하거나 그들이 아주 무식하기 때문이다. 만일 좌익의 반미주의가 그들의 무식 때문이라면 잠시 해방전후사를 살펴 그들의 무식을 깨우쳐 주도록 하자.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후 1919년에 삼일운동의 독립정신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구성된 상해 임시정부는 우리의 주권 회복을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우리의 호소를 못들은 척 했으며 심지어 상해임정의 외교서한을 읽어보지도 않았다. 다행히 선교사들을 통해 보다 우리 민족과 친분이 두터웠던 미국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지지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좌익에게 미국이 우리를 대신하여 포츠담, 얄타, 카이로 회당 등에서 우리의 독립운동을 지지한 것이 무엇이 잘못이라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아마도 무식한 좌익은 1945년 8월 15일 미국의 도움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소련군이 한반도로 납하하였으니 소련도 우리 민족의 해방에 기여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이미 항복하고 우리 민족이 해방된 후에 우리나라 땅에 진군한 것이 과연 우리나라를 해방시키기 위한 진군이었던가? 어리석은 좌익은 그렇다고 말한다. 이렇게 시대를 거꾸로 보는 안과 질환에 걸린 좌익에게는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보이고, 소련군이 삼팔선 이남으로 남하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입국한 미군은 점령군으로 보인다.

   안과 질환에다 판단력 상실증의 합병증까지 앓고 있는 좌익은 소련군이 한반도에 진군한 것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팽창을 위한 것이니 괜챦다고 말한다. 물론 러시아에 공산주의를 전세계에 팽창시키려는 제국주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2차 대전이 끝나자마자 러시아는 군대를 동유럽에 보내 동구 여러나라들을 러시아 위성국가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소련군이 한반도로 진군한 보다 중요한 이유는 부동항이었다.

   1905년 노일전쟁 때 러시아의 막강한 해군이 일본군에 참패한 중요한 이유는 부동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군은 일본군과의 해전을 위해 세계 일주를 해야 했으며, 이것이 러시아의 패전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러시아가 북한에 가지는 이해관계는 부동항이다. 또 다시 일본과 전쟁을 치룬다면 러시아는 전략적으로 북한의 부동항이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이번 다자 회담에 북한이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이유요, 따라서 6자 회담이 우리에게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여기서 무식한 좌익은 부동항 획득이 소련군의 한반도 주둔의 주 목적은 아니었다고, 당시 미소 대립 구도 하에서 러시아는 한반도에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할 필요가 있었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래서 좌익은 무식하다. 그리고 무식하면서 유식한 척 하는 것이 언제나 좌익의 병이다. 러시아가 꼭둑각시 김일성을 앞세워 우리나라 땅에 괴뢰정부를 세우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 미소 대립 구도라는 것이 있었는가? 아니다. 없었다.

   미국이 끈질긴 요청으로 마침내 러시아가 일본에 선전포고한 날이 일본이 미국에 항복하기 불과 일주일 전인 1945년 8월 8일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미국은 러시아에 막대한 군수물자 원조를 해주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무식한 좌익에게 만약 그 당시 참으로 미소대립구조라는 것이 있었다면 소련군이 한반도로 남하하기 며칠 전까지 어째서 미국이 러시아에 막대한 군수물자 원조를 해주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좌익의 돌대가리 머리로도 적국에 군수문자 지원을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그 당시 왜 러시아에 군수 지원을 하였을까?

   그것은 오늘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 회담과 비슷한 성격이 있었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 당시 국제사회의 문제거리는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에는 전 국민 최후의 1인까지 미국과 싸우다 죽으라는 국가 명령이 떨어져 있었다. (당시 일본이 말하는 전 국민에는 우리 민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되도록 인명 피해를 줄이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북으로부터의 압박이 필요했다. 그래서 러시아를 침략했던 독일군을 미국이 무찔러주었듯이 이번에는 러시아군도 미국을 위해 움직여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즉, 1945년 8월에 미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연합국 동맹 관계에 있었다. 무식한 좌익의 주장과 달리 그 당시 미소대립 구조라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미소간의 간격이 벌어지는 조짐은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 사이에 그해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독일 베를린의 교외 포츠담에서 개최된 포츠담 회담 때 있었다. 이 정상회담의 특징은 3개국 정상이 각각 군사 지휘관들을 대동하고 참석하였다는 점이다. 소련군 지휘관들은 한국에 일본군 기지가 있으니 한국을 공격하자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연합군의 공격 대상은 일본 본토이지 한국이 아니라는 것이 미국측의 답변이었다. 러시아군이 우리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미국이 막아내고 우리 민족 독립 약속을 러시아로부터 받아낸 것이 1945년 8월 2일의 포츠담 선언이었다.

   한반도 바깥에서는 김일성 꼭둑각시를 앞세워 한반도에 공산주의 정부를 세울 준비에 착수하며, 한반도 내부에서는 박헌영씨를 지원하여 내부로부터 공산화 작업을 진행 중이던 러시아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를 공격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끙끙이 속은 무엇이었을까? 태평양 전쟁 참전 의사를 비쳐 미국으로부터 받을 군수물자 원조는 다 받아챙기면서 자국 군대를 한반도에 주둔시킬 명분까지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한반도 주둔 준비를 끝낸 러시아는 명분이 있든 없든 우리나라가 해방되자마자 국경선을 넘어 러시아군을 한반도에 남하시키기 시작했다.

   1945년 8월이면 미소 대립구조는 커녕 아직 미국에는 대외 정책조차 없던 때였다. 1830년대에 미국 몬로 대통령이 미국은 외국의 정치나 전쟁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고립정책을 발표한 후 몬로주의를 백 년 이상 고수하여 왔었다. 2차 대전 때 처칠의 간청에도 응하지 않던 미국을 참전하게 자극한 것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이었다. 그리고 독일, 이탈리아 및 일본 등을 상대로 싸우던 미국에 대외 정책을 생각해 볼 겨를이 있었을리 없다. 일본이 항복하였을 당시 미국에는 대외 정책은 커녕 대외 정책 전문가도 없었다. 아직 공산주의 국가들은 미국의 적국이 아니었으며, 미국은 우리 민족의 독립 지지 외의 다른 의도는 없이 우리나라를 지원하여 주었다.

   여기서 비록 양심마비증 환자인 좌익도 한번 공명 정대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2차 대전이 끝나자마자 미군은 전쟁터에서 철수하여 본국으로 귀국하였다. 그런데 미국이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해방시켜 준 나라들에 소련제 탱크가 달려와 공산주의 정부를 세웠다. 독일군과 일본군이 항복한 곳마다 러시아군이 입성하여 총 한번 쏘지 않고 무수히 많은 나라들을 점령하였을 때 어찌 미국이 러시아의 의도를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미국은 아직 한번도 공산주의의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나라요, 따라서 공산주의는 다른 나라 문제였지 미국의 문제는 아니었다. 무식한 좌익의 착각과 달리 미국은 아직 반공주의 국가가 아니었으며, 공산주의에 대한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나 항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동독, 폴랜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너무도 많은 나라들이 미국이 힘들여 싸워 독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더니 러시아 밥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어찌 러시아 제국의 팽창주의에 대해 경각심을 품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동유럽을 꿀덕 삼킨 러시아군이 한반도에까지 진군하였을 때 이것은 미국의 인내심의 한계였다. 러시아의 엉큼한 의도에 경계심을 품기 시작한 미국 역시 미군을 우리나라에 입국시켜 일제의 조선총독부를 해산시켰다. 그러나 좌익의 착각과 달리 여전히 워싱턴 행정부에는 반공 정책이 없었다. 1951년 4월에 트루만 대통령이 미국의 영웅 맥아더 장군을 해임한 것도 그의 반공 전략 때문이었다. 미국 정계에서 맥아더 장군의 반공주의가 옳았음을 깨달은 것은 훨씬 후의 일이다. 아직 미국에 해외 정책 전무가가 없었던 시절에 맥아더 장군은 미국의 정치인들보다 수십 년 앞을 내다 보았던 것이다.

   차기 대통령감이라던 오성 장군 맥아더 장군은 그의 반공주의 전략 때문에 불명예 해임당하였다. 그러나 그 무엇이 맥아더 장군으로 하여금 민간 정치인들보다 수십 년 앞서 국제 정세를 읽고 반공주의자가 되게 하였을까? 어쩌면 그는 아시아에서 2차 대전을 일으킨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임에도 포츠담 회담에서 러시아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폭격을 제의하였을 때 러시아의 엉큼한 속을 읽었는지 모른다. 이런 러시아의 비열한 행동을 까맣게 몰랐던 한국 좌익은 해방 정국 때 러시아에 충성하였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러시아의 꼭둑각시가 한국 지도자가 되는 것이 옳지 않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미국 행정부의 판단이 아니라, 한국인의 영원한 친구 맥아더 장군의 판단이었다.

   여하튼, 미국도 정책적 실수를 범한 적이 몇번 있었다. 아무리 최후의 1인까지 미국과 싸우겠다는 일본이라는 문제거리 해결을 위한 의도였다지만 태평양 전쟁에 러시아를 끌어들인 것은 미국의 결정적 실수였다. 오늘날 북핵이라는 문제거리 해결을 위하여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 회담이 미국이 실수가 아니기를 우리는 바란다. 북한이 이 회담에서 노리는 것은 북미 불가침조약이요, 북미 불가침조약은 적화통일의 전단계이다. 멍청한 좌익은 북미 불가침조약이 체결되기를 바라는가? 아아! 이 멍텅구리 좌익아! 적화통일되면 1천만 학살 대상자 명단 첫줄에 너희가 있는데도 어찌 그것을 바란다는 말인가? 어리석은 좌익은 이제라도 정신차리고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반대의 선봉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좌익도 살고 우리 민족도 사는 길이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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