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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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3월 30일 

전쟁과 경제의 관계에 대한 좌익 주장의 모순

   좌익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중에 미국이 무기 팔아먹으려고 전쟁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예가 있는가? 좌익들은 한국 전쟁 때 미국이 우리나라에 무기를 수출해서 돈벌었는지 아는 모양이다. 좌익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 6.25동란 때 한국군과 UN군이 필요한 무기와 군수용품을 미국에서 실어오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에 군수 물자 생산을 의뢰했다. 미국이 한국을 위해 일본으로부터 무기를 얼마나 많이 수입했는지 한국 전쟁 동안 일본이 벌어들인 달러로 일본 경제의 성장 기반이 마련되었다.

   지금은 미국이 한국에 무기를 파는가? 판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량의 한국군 장비는 미국의 무상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최신식 무기를 개발하여 교체하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전투기와 탱크 등 우리가 무상 지원받는 무기들이 미국의 최신형 무기와 몇년의 시간차가 좀 있을 뿐이다. 만일 미국이 한국에 무기를 팔아 돈을 번다면 식량 등 엄청난 수입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미교역 흑자가 연 100억불인 이유가 무엇인가? 통일된 독일도 러시아도 중국도 아프리카도 미국에서 무기를 수입할 리 만무하여 더구나 이라크 같은 테러지원국에는 절대로 무기를 수출하지 않는다. 월남전 때도 모든 무기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그럼 좌익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이 무기를 팔아 돈을 벌만한 전쟁이 무슨 전쟁인가? 제2차 세계대전? 좋다! 어디 따져보자.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라크전 파병 문제를 놓고 국론이 팽팽하게 갈라져 있다. 국회의사당 한 편에서 파병 찬성 시위를, 다른 한편에서는 파병 반대 시위를 하는 이상한 나라이다. 그런데, 믿거나 말거나 미국에도 그런 때가 있었다. 유럽에서 한창 2차 대전이 진행 중이던 때 영국과 프랑스계 미국인들은 미군 파병을 강력하게 호소하였다. 그러나 독일계 미국인들은 미군 파병을 결사 반대하였었다. 유럽 국가들은 전 유럽이 히틀러의 나치군 군화에 짓밟히게 되었는데 모른척 하고 있을 것아냐며 조속한 미군 파병을 보챘으며 미국 전역이 파병 찬성과 반대 토론으로 들끓었다.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도 오늘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럼에도 파병 반대가 당시 미국 여론의 대세였다. 1823년에 몬로 대통령이 "미국은 국제 문제에 개입하지도 간섭하지도 않는다"는 몬로주의(Monroe Doctrine)를 주창한 이래 미국의 고립 정책은 근 120년간 계속되었다. 쉽게 설명하면 서부 영화 속의 미국은 외국에 파병하지 않았다. 이렇듯 고립 정책이 미국의 전통이었다는 이유 외에도 미국 시민들은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미군 파병을 반대하였다. "아니, 대공황을(우리말로 보리고개를) 넘긴지 몇해나 되었다고 파병한다는 말인가? 남자들 남의 나라 전쟁터에 다 보내면 일은 누가 할 것이며 무기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미국의 이라크 전쟁 참전의 뿌리는 테러범들이 납치한 비행기가 뉴욕의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였던 2001년 9.11 테러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미국이 외국에서의 전쟁의 불씨를 사전 예방하는데 적극적이 되게 한 사건은 바로 1941년 12월 7일의 진주만 폭격이었다. 그날 미국 시민은 낙원과도 같았던 진주만에 위치한 미 해군 기지가 순식간에 초토화되며 2,300 명의 병사들이 그 자리에서 전사하는 것을 보았다. 이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더 이상 중립국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남의 나라 전쟁이 더 이상 남의 나라 전쟁이 아니었다. 여태껏 평화를 즐기던 잠자는 호랑이가 깨어 일어났다. 꼼수 일본인들은 그들의 진주만 폭격이 미군 파병의 단합된 여론을 일으킬 것을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독일이 1945년 늦봄에 항복하고 일본도 그해 8월 15일에 항복하므로 미군 병사들이 삼년 만에 본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 그들은 미국이 아주 가난한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었다. 한창 돈 벌 남자들이 모두 전쟁터에 가있었으니 나라 경제꼴은 뻔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미국이 경제대국이 되어 있었다. 좌익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2차대전 이전의 미국은 늘 경제력이 약하거나 그다지 강하지 않은 나라였다. 그런데, 2차 대전 후에 오히려 미국이 경제 대국으로 변해 있었다. 어찌된 일이었을까? 부지런히 무기를 연합국에 무상으로 지원해 주고 파병 비용도 많이 들었는데 왜 오히려 미국의 경기가 살아난 것이었을까? 바로 이 질문에서 "소비는 미덕이다"라는 현대 경제학 이론이 출발한다.

   전시에 미국은 공장을 지어 무기를 만들고 군수용품을 공급해야 했다. 이것이 투자였다. 투자하니 노동자들에게 심지어 여성들에게도 일자리가 생기고 수입이 생겼다. 수입이 생긴 노동자들은 지출을 하였다. 그들이 지출한 비용은 산업 재투자에 활용되었다. 이런 순환이 삼년 남짓 계속되는 사이 미국은 경제 체질이 아주 강한 나라가 되었으며, 미국 경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국민들의 생활 수준은 높아지고 국가의 재화는 풍부해졌다. 여기서 미국의 경제 이론의 패러다임도 바뀌었으며, 종전의 고립 정책도 적극적인 세계 경찰 국가의 역할로 바뀐다.

   여기서 좌익들은 미국이 자국 경제 다시 일으킬려고 이라크 전쟁 일으켰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게 아니다. 요즘 첨단 무기는 옛날처럼 노동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기 하나에 수천 개의 반도체 칩이 들어간다. 그리고 미국은 그 칩을 한국에서 수입한다. 즉, 전쟁은 미국에서 하지만 반도체 호황은 한국에서 맞고 있다는 것이다. 여하간 2차 대전 중의 미국 경제 성장의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경제학적 교훈이 있다. 그것은 샘물의 원리라는 것이다.

   신약성경 마가복음 10장 17절에 보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묻는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너에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우리 예수님은 경제는 모르신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이들이 있다. '평화의 기도'로 유명한 이탈리아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1182-1226)가 그렇게 하여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다. 프란시스는 팔지 않고 주었다. 미국의 록펠러는 팔아서 주었다. 그는 남에게 주기 위해 사업을 하였다. 그 결과 그는 미국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좌익들은 우리나라에도 박정희 대통령께서 발전시킨 좋은 경제 이론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참전이라는 값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터득한 경제 원리를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수입 이론이 아니라 토종 이론으로 발전시키셨다. 이 경제 이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이 글에서는 "샘물의 원리"라고 부른다. 늘 사대주의적인 좌익에게는 한국 토종 경제 이론이 있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납득이 안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 늦어도 조선시대부터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실학 사상을 실천하신 분인데, 그럼 조선시대 실학이 발전시킨 토종 경제 이론을 살펴보기로 하자.

   18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 박제가, 박지원 같은 실학자들이 경제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 이전까지는 조선왕조는 농업 자급자족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상공업을 천시하였었다. 그러나 실학자들은 재물은 우물과 같아서 상공업을 발전시킬 수록 재화는 풍요로와진다는 경제 이론을 발표하였는바 그 한 예가 박제가가 그의 저서 『북학의』에서 "무릇 재물은 우물과 같다"고 한 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나라의 경제가 원활라게 돌아가는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절약과 검소만이 농사가 아니다.

산업이 발달하여 공장에서 많은 물건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길이 있어야만 경제는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다. 우물의 물은 퍼내서 쓰지 않고

뚜껑을 만들어 덮어 두면 얼마 못가서 말라 버리고 만다.

   또, <검소하다는 것은 물건을 남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물건이 없다 하여 스스로 단념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라안에 구슬을 캐는 집이 없고, 시장에 산호 등의 보배가 없다. 금과 은을 가지고 가게 들어가도 떡을 살 수 없는 형편이다>라는 『북학의』의 한 구절은 세계 2차대전 참전을 기점으로 미국의 새 경제 개념에서 검소가 미덕에서 소비가 미덕으로 바뀐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리고 <무릇 재물은 우물과도 같다. 우물의 물은 퍼서 쓸수록 자꾸만 가득 채워지는 것이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 버리고 마는 것이다>라는 박제가의 말은 박정희 대통령의 "샘물의 원리"에서 "소비는 미덕이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무조건 소비가 미덕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는 외제를 선호하는 국민에게 국산품을 애용해 달라고 호소하셨다. 미국처럼 경제 대국이 된 나라에서는 투자, 소득, 지출, 재투자의 순환이 이루어지면서 경제가 발전한다. 그럼, 투자할 자본이 없는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삼대 요소에 기술, 가격, 마케팅이 있다. 여기서 기술과 가격은 본질적 개념이라면 마케팅은 공급자의 기술과 소비자을 위한 가격 사이에서 운용하는 전략적 개념이다. 쉽게 말하면, 소비자는 기술 수준이 높은 제품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값이 싸더라도 기술의 질(質)이 너무 떨어지면 수출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똑같은 품질의 제품일 때는 가격 경쟁력이 있는 제품이 수출된다. 따라서 수출 제1요소는 기술 육성이다. 박정희 대통령 때 뚜렷안 경제 정책 목표는 산업화 정책이었다. 그는 삼십 년을 내다 보고 기술 육성 정책을 펴셨다. 첫 단계는 생산 자립, 그 다음 단계는 기술 자립, 마지막 단계는 부품 기술 자립이다.

   기술만 있으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수출이 된다. 최고의 기술, 독특한 기술만 있으면 저절로 수출이 되기에 기술 개발은 수출 육성의 제1요소이다. 부품 기술 자립까지 이르면 선진국이 된다. 그때는 이미 안정된 국제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경제 정책을 성장에서 분배로 바꾸는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서민 경제 향상을 위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앙김씨는 거꾸로 생각하였다. 한창 부품 기술 자립의 목표를 세워야 할 때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며 분배의 평등부터 앞세웠다. 그 결과 부품의 일본 의존도가 높으니 휴대폰 전화기를 아무리 많이 미국에 수출하여도 그 로열티는 일본에 간다.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마케팅 전략의 정책이었다. 그의 경제팀은 오대양 육대주의 철저한 수출 시장 조사를 하여 업종별로 경쟁력 있는 기업에 수출 시장을 열어주는 전문화된 수출 전략을 폈다. 그 결과 외화가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왔으며 GNP 성장율이 박정희 대통령 때의 9%보다도 높은 12%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 발전시키신 기술 개발의 덕을 크게 보았다. 기술 수준이 낮으면 아무리 마케팅 전략이 좋아도 소용 없다. 따라서 경제 발전을 위한 "샘물의 원리"에서 기술 개발과 수출 마케팅은 같이 돌아야 하는 축이다.

   경제를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이 발전시킨 기술 자립화 목표와 수출 마케팅 전략을 그대로 계승시키면 우리나라는 곧 선진국이 될 수 있는데, 선진국 문턱에서 좌익의 엉터리 경제 논리가 설치고 있다. 좌익 운동권의 경제 논리는 기술 자립화 목표와 수출 마케팅 전략이 있기는 커녕 가격 경쟁력마저 해치는 노조 파업만 일삼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 논리에도 기술 자립의 목표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는 자동차 산업의 기술 자립화를 많은 투자를 한 김우중씨를 내쳤다. 1997년 말 외환 위기 때문에 잠시 유동성 위기를 겪었을 뿐이지 부품 기술 자립화를 거의 달성한 대우는 해외에 매각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기업이었다. 노무현씨 경제팀은 개혁한다며 장부 검사를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술 자립화 목표와 수출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느냐이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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