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령 목사의 시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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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6월 9일 

미국은 한국전에 왜 참전하였는가?(1): 신앙의 자유

    공산주의자들은 사회를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투쟁으로 나눈다. 그러나 계급 투쟁 심리를 부추기는 나라들은 멸망하였다. 무엇이 미국의 힘인가? 미국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한 커뮤니티를 이루는 나라이다. 미국에서 아메라칸 드림은 특정 계층의 점유물이 아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 단지 누가 먼저 노력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럽인의 시각에서 미국은 참 이상한 나라이다. 누가 미국에 갔는가? 1632년에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에 갔으나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다음에 미국은 유럽의 죄수들을 망명 보내는 나라였으며, 그 다음에는 유럽의 못 배운 자들, 가난한 자들이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서 간 나라였다. 유럽인의 시각에서 유럽은 양반의 나라요, 미국은 상놈의 나라이다. 실제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독일 유학을 갔다 오지 않은 자는 지성인 취급을 받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지금 미국과 유럽의 위치는 바뀌어 있다. 유럽이 뭉쳐도 여전히 세계의 리더는 미국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선전과 달리 유토피아는 러시아나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서 이룩되었다. 그리고 북한을 제외한 모든 구공산주의 국가들이 미국의 시장 경제를 배우며 미국의 자본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자본주으자들과 싸우던 공산주의자들이 특구까지 만들어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 자본가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힘의 비결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외에 또 하나의 힘의 원천이 있다. 미국인은 누구인가? 미국인은 온갖 인종, 온갖 민족이 다 모여있는 나라이다. 파웰 국방장관처럼 그 선조가 아프리카인인 사람들도 있고, 언어가 각기 다른 유럽 여러 민족의 후예들도 있다. 그럼에도 단일 민족인 한국인이 누구인가를 말하기보다 미국인이 누구인지를 말하기가 더 쉽다. 온갖 종교가 다 모여있는 나라이되 대통령 취임 선서를 성경에 손을 얹고하며, 취임 예배가 취임식의 중요한 순서이다. 그리고 국론이 단합되어 있다. 반전 시위를 하다가도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단합한다. 우리가 한일 월드컵 때 보여준 단결을 미국인은 언제나 하고 있기에 우리는 미국의 국론이 무엇인지를 안다. 미국인을 특징짓는 뚜렷한 국민성이 있기에 우리가 미국인은 누구다라고 말할 수 있는 미국인이 있다.

   미국은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미국 명문가의 자제로서 한국 스님이 된 이들도 있다. 기독교인이 기독교국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신앙의 자유가 넘치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북한은 어떠한가? 북한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다. 오로지 김일성, 김정일 숭배 사상만 있을 뿐, 그 외의 다른 신앙의 선택권이 없다. 종교의 자유만 없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자유도 없다. 어째서 주체사상 이론가로서 제1인자인 황장엽씨가 자기 가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생사를 건 귀순을 하였는가? 사상의 자유가 없는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김대중이 황장엽씨의 자유를 억압하는가? 민주화 운동가라는 허울 속의 그의 정체는 좌익이기 때문이다.

   좌익은 민중의 이름을 팔며 인권과 분배의 평등을 외치기에 종교인들이 좌익에 잘 속는다. 1975년 월남의 짠후탄 신부나 틱낫한 스님 모두 친북 좌파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 모두 북쪽의 공산당 침략군의 공격을 유리하게 해주는 성명을 발표하여 그해 4월 15일에 월남이 패망하였다. 짠후탄 신부는 자기가 공산주의자들이 조작한 민주화 운동에 속은 것을 깨달은 날 공산당 군대에게 처형당하였으며 월남의 신앙의 자유는 사라졌다. 중국과 러시아가 공산주의 경제를 버리는 것을 보고 따라서 호지명 정부가 공산주의 경제를 버리고 서구의 자본주의를 도입한 지 어언 십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베트남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다. 자기네를 진보 집단으로 내세우며, 분배의 평등 이념이라는 허울을 쓴 좌익 사상의 귀결은 신앙의 자유의 부정이다.

   그러나 미국은 신앙의 자유가 넘쳐나는 나라이다. 할리우드의 대중문화가 부추기는 세속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온 국민이 신앙의 자유를 만끽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싸운다. 이것이 미국이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산주의와 싸운 이유이다.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이듬해인 1950년 1월 미국의 아치슨 국무장관은 한반도는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선언을 하였다. 그 관점에서는 북한이 남한을 점령하든 말든 미국이 상관할 바 아니었다. 그럼에도 미국이 즉시 한국전 참전을 결정하였던 것은 공산주의 세력과 싸우기 위함이었으며, 미국이 공산주의 세력과 싸워야 했던 이유는 공산주의는 신앙의 자유의 적이었던 까닭이다.

   혹자는 미국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한국에 파병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미국이 한국에서 거둘 경제적 이익은 없어 보인다. 만일 경제적 실리를 따졌다면 미국이 파병하였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항가리 등 무수한 나라들이 소련 지원 세력에 의해 공산화될 때도 방관하였던 미국이었다. 그리고 만일 정치적, 경제적 실리를 따진다 해도 중국이 한국보다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더 컸다. 그럼에도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반년 전 모택동의 공산당군이 쟝개석 총통 치하의 중국 본토를 총공격하였을 때 미국은 파병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자마자 아치슨 국무장관이 "한반도는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을 때 김일성은 그것을 남한을 거져 가져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십년 전 일본의 군국주의가 전 아시아와 태평양의 국가들을 점령할 때도 미국은 모른척 했었다. 만일 일본이 1941년에 진주만 폭격을 하지 않았다면 영영 미국은 일본과 싸울 일이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일본 군국주의가 일으키는 침략 전쟁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북한 공산주의가 일으킨 침략 전쟁에는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파병하였다. 스탈린은 모택동의 게릴라 군대가 아닌 쟝개석 총통의 정부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U.N. 군 파견도 중국 전쟁 때가 더 수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대국 중국이 아닌 조그만 나라 한국을 위해 파병하였다.

   재미교포가 한국을 모국으로 생각하듯이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영국, 프랑스, 화란 등 유럽 국가들을 모국으로 생각하거나 그 혈통을 이어받고 있다. 그럼에도 유럽이 온통 독일 나치군의 군화에 짓밟히기 전에 파병해달라는 긴급 S.O.S. 요청에는 파병 찬반 논쟁으로 세월을 보내던 미국인들이 한국전에는 즉각적으로 파병하였다. 6월 29일 전화로 맥아더 장군의 파병 건의를 보고받은 트루만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도 받지 않고 파병 결정을 내렸으며 한국전 참전을 선언하였다. 정부 예산 전액에 가까운 미국의 무상 지원으로 버티던 빈민국 한국이 미국인들에게 그토록 소중한 나라였을까?

   첫 파병 부대인 스미스 부대는 6월 30일 취침 중에 출동 명령을 받았다. 일본 군국주의의 군화가 남의 나라를 짓밟든 독일 나치즘의 침략군의 전 유럽을 정복하든 자기네 알 바 아니라던 미국인들이 왜 북한 공산주의 군대의 남침을 받은 우리나라에는 자다 말고 달려왔을까? 왜 미국은 공산주의와는 그토록 강하게 맞서 싸우는 것일까? 그것은 공산주의는 신앙의 자유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와 신앙의 자유는 양립하지 못한다. 그것은 공산주의는 단순한 좌익 경제관이 아니라 무신론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맥아더 장군처럼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어떤 위치에서 일하든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비록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맥아더 장군이 트루만 대통령께 한국전 참전을 호소하기 전 기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오만 명의 미국의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목숨을 바쳐 우리에게 신앙의 자유를 사 주었다. 당시만 해도 남한에는 기독교 신자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북한 피난민들의 천막 교회를 통해서 남한에 신앙부흥운동이 크게 일어났으며, 한국은 세계 선교하는 나라가 되었다.

   첫 파병 부대인 스미스 부대 500 명의 장병에게 주어진 임무는 U.N. 군이 도착할 시간을 벌기 위하여 최대한 적군 90.000 명의 병력 남하를 저지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처 훈련받을 틈도 없이 소총만 들고 전선에 투입된 소수의 미군 병력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며 쳐들어오는 인민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때 첫번째로 전사했던 미군 의무병은 이렇게 외쳤다. "What a place to die!"(이런 데서 죽다니!)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의 병사의 생명도 소중하다. 케네디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도 모두 어제의 군인들이었다. 그런 미국의 젊은이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공산주의 침략군을 막아내기 위하여 오만 명이 죽고 삼십 만명이 부상당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몸바쳐 우리에게 사준 자유 중에 가장 소중한 자유는 신앙의 자유이었다.

김대령 목사의 글    
http://www.geocities.com/sion_prea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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